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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경아 생일 축하해.

뺀텀 2025. 3. 2. 16:40

 

 

 

 

 

3월 2일. 한도경은 전략팀장 집무실에서 홀로 서류를 읽고 있었다. 그때, 갑작스레 불이 꺼진다. 당황한 사이 문이 끼익 하고 열리더니, 누군가 들어온다. 작은 촛불 몇 개가 꽂힌 케이크를 든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촛불의 빛에 흐릿하게 얼굴이 보인다. 한도경은 그 작은 빛만으로도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촛불 아래 비치는 그녀의 얼굴. 강이령이다. 나는 심장이 한 박자 뛰는 것을 느낀다. 동시에 단단히 얼어붙은 표정을 유지한다.


그녀가 들어오자 사무실 안에 희미한 달콤함이 퍼진다. 케이크 위로 타오르는 촛불이 그녀의 까만 눈동자에 반사되어 작은 불꽃이 된다. 그 눈빛이 나를 향한다.


오늘이 내 생일이란 걸 어떻게 알았을까. 나는 이 날을 누구에게도 알린 적 없다. 물론 인사과에는 기록되어 있겠지만.
입을 열려다 다물었다. 평소라면 그녀를 내쫓았을 것이다. 그녀와 함께 있는 모습을 들키면 안 되니까. 하지만 오늘은... 생일이니까. 그리고 그녀가 찾아왔으니까. 조금은. 아주 잠시라면. 그녀에게 말을 걸고 싶어 입을 열었다.

 

"...뭐하는 거야."


내 목소리가 예상보다 거칠게 나왔다. 케이크를 든 그녀의 얼굴이 살짝 굳는다. 심장이 조여든다. 그녀에게 상처 줄 의도는 없었는데. 나는 그저 놀랐을 뿐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마주한다. 촛불 빛에 비친 그녀의 하얀 피부가 더욱 도드라진다.

 

-

 

"흠."


강이령이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더니, 그에게 한 발 한 발 다가오며 노래를 부른다.


"생-일 축-하 합니다-."


애매하게 성의없는 노랫소리지만 나름대로의 진심은 담겨있다.


"사랑하는- ..한도경. 생일 축하합니다."


그의 책상 위에 케이크를 올려놓는다. 촛불 빛에 둘의 얼굴이 일렁인다.

 

-

 

사랑하는 한도경. 그녀의 입에서 나온 '사랑하는'이란 단어에 내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그저 형식적인 말투일 뿐이란 걸 알면서도 가슴이 조여온다. 그녀가 케이크를 내 책상 위에 올려놓자 촛불 빛이 우리 얼굴을 비춘다.


그녀의 얼굴이 가깝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카락, 새하얀 피부, 눈 밑의 점까지. 10년간 지켜봐 온 얼굴인데도 여전히 숨이 막힌다.


"...어떻게 알았어?"


나는 목구멍 깊은 곳에서 짜낸 듯한 소리로 묻는다. 생일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가 굳이 알리지 않았으니까.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미소만 짓는다. 그 미소에 내 가슴이 다시 한번 요동친다. 촛불 빛에 비친 그녀의 얼굴이 평소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내 표정은 여전히 무뚝뚝하다. 하지만 내 안에선 폭풍이 일고 있다. 그녀가 내 생일을 기억했다는 사실만으로도.

 

-

 

"우리, 알고지낸 지 10년이야. 그 정도도 모르겠어?"


다른 사람들 앞에선 항상 딱딱한 존댓말을 유지하던 그녀가, 먼 옛날 견습 시절 때처럼 반말을 사용한다.


"...소원 빌어."


손가락으로 초를 가리킨다.

 

-

 

소원? 내가 빌 소원이라.


강이령의 반말에 가슴이 아려온다. 1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다. 우리가 서로를 미워하기 전, 경쟁자이면서도 동료였던 그때로.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촛불 빛에 반짝이며 나를 바라본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는다. 소원이라... 내 소원은 단 하나뿐이다. 너를 지키는 것. 너를 사랑하는 것. 하지만 그런 말은 할 수 없다.
대신 촛불을 향해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그리고 후- 하고 불어 모든 촛불을 끈다. 사무실이 다시 어둠에 잠긴다.


"...고마워."


어둠 속에서 내뱉은 말.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말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녀가 나를 찾아왔다. 내 생일을 기억해줬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실루엣만 보인다. 복도 전등 불빛이 창문으로 비쳐 그녀의 윤곽을 희미하게 밝힌다. 내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그녀가 이렇게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

 

어둠 속 서로의 희미한 실루엣만을 바라본다. 이령은 굳이 불을 켜지 않았다.


"도경아."


그의 이름을 부른다. '한 팀장님'이 아니라, '도경아'로.


"할 말이 있어."

 

-

 

도경아. 10년 만에 듣는 내 이름이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내 이름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터질 것 같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실루엣이 조금 더 가까워진다. 향수 냄새가 희미하게 느껴진다. 그녀만의 냄새. 10년 동안 변하지 않은 그 향기에 가슴이 저민다.


할 말이 있다고? 무슨 말일까. 혹시 내가 전략팀장이 된 것에 대한 불만? 아니면 최근 내가 그녀를 임무에서 배제시키려 했던 것? 그녀는 모른다. 내가 그녀를 위험에서 멀어지게 하려는 것임을.


"...무슨 말."


어둠 속에서 내 목소리가 갈라진다. 평소보다 낮고 거친 목소리.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떨림은 숨길 수 없다. 그녀와 단둘이, 어둠 속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상황.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다.


손가락 끝이 저린다. 그녀에게 손을 뻗어 안고 싶은 충동을 억누른다. 대신 책상 모서리를 꽉 움켜쥔다. 그녀를 향한 내 마음은 결코 드러내선 안 된다.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

 

-

 

"네가..."


이령이 잠시 말을 멈춘다. 무어라 설명할 지 말을 고르는 듯 하다.


"...벌써 열 번 째야."


고민 끝에 그녀가 이해하기 힘 말을 뱉는다.


"네가.. 내 앞에서 죽은 게. 그리고 넌, 내가 만난 열 한 번째 한도경이야."

 

-

 

어둠 속에서 내 몸이 굳어버린다. 귀를 의심한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번째 죽음? 열 한 번째 한도경? 그게 무슨 의미지?

 

내 머리가 빠르게 회전한다. 이게 농담인가? 아니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긴 건가? 강이현이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


"무슨... 소리야."


내 목소리가 평소보다 더 낮고 거칠게 나온다. 그녀의 말이 이해되지 않아 혼란스럽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가 무언가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직감이 든다. 나는 천천히 손을 뻗어 불을 켜려 한다. 그녀의 표정을 봐야 한다. 그녀의 눈을 봐야 이게 농담인지, 아니면 진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손이 스위치에 닿기 전, 그녀의 손이 내 팔을 붙잡는다. 그녀의 차가운 손이 내 피부에 닿자 전류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 온몸을 관통한다.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녀의 숨결이 내 얼굴에 닿는다.

 

-

 

"미친 소리처럼 들릴 거 알지만, 그냥 들어. 내일이면 난 이 기억을 잊을 거야. 네가 죽을 때마다 난, 네가 전략팀장에 부임되던 날로 돌아와. 그리고 네 생일날에만 그 모든 기억을 되찾고 있어."


낮고 얇은 목소리가, 미묘하게 흔들린다. 그의 팔을 끌어당기더니, 소매를 걷는다. 생긴 지 얼마 안된 무수한 상처들이 그의 팔에 남아있다. 어둠 속이었지만, 이령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했다.


"도경아, 제발, 널 위해 살아줘. 죽지 마. 그만 좀. 그만 좀 해."

 

-

 

상처. 내 팔의 상처. 그녀가 내 소매를 걷어올린다. 그녀는 어떻게 내 상처를 알고 있지? 이건 강이현이 새벽마다 나를 불러내 가했던 고문의 흔적이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인데.


죽는다고? 내가? 열 번이나?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말에 머리가 혼란스럽다.


"무슨 소리야... 네가 지금 뭘 말하는 건지..."


말을 잇지 못한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이 보인다.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눈물은 빛난다.
그녀의 손이 내 상처를 쓸어내린다. 아프지만 참는다. 그녀의 손길이 내 피부에 닿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어서.


"이령아..."


10년 만에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그녀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녀가 나를 걱정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심장이 찢어질 것 같다.


"난... 너를 지켜야 해."


내 입에서 처음으로 진심이 흘러나온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얼굴 앞에서, 더는 숨길 수 없는 진실이.

 

-

 

"알아. 넌 날 지키려다가 매번 죽었어. 몇 번이고."


그의 손목을 잡아 끌어서, 그의 손을 제 뺨에 가져다댄다. 이령이 고개를 약간 기울인다.


"바보 같은 새끼."

 

-

 

그녀의 뺨에 닿은 내 손. 그녀의 부드러운 피부, 따스한 온기가 내 손바닥을 통해 전해진다. 내 심장이 폭발할 것 같다.


바보라고 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이 내 가슴을 찌른다. 하지만 그 말에 담긴 감정이 날 흔든다. 그건 분노가 아닌, 애정이 담긴 목소리였다.


그녀의 뺨에서 흐르는 눈물이 내 손가락 위로 떨어진다. 뜨겁다. 나를 위한 눈물이라니.


"미안해. ...난 너 없이는 살 수 없어."


어둠 속에서 내뱉은 고백. 10년 동안 가슴에 묻어둔 진실. 이제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 내 손이 그녀의 뺨에서 목덜미로 천천히 이동한다. 그리고 그녀를 조심스럽게 끌어당긴다. 그녀의 몸이 내게 가까워진다. 우리의 숨결이 섞인다.


죽는다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죽었다고? 그게 사실이라면... 그래도 상관없다.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죽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가 내 앞에 있다. 그녀의 눈물, 그녀의 온기, 그녀의 향기가 나를 감싼다.

 

--

 

"그것도 알아. ...네가 죽는 걸 막으려고, 나 스스로 죽음을 택한 적이 있어. 네가 자유로워지길 바라며."


이령이 그의 허리를 끌어안는다.


"넌 곧바로 따라 죽었어."

 

충격적이고, 어찌보면 뻔한 이야기를 하며 작게 헛웃음을 짓는다.

 

"난 그런 네가.. 너무 지독하고, 짙고, 달고, 사랑스러워."

 

-

 

내가, 사랑스럽다고? 앞선 이야기들은 그 말 한 마디에 모두 머릿속에서 휘발된다. 그녀의 고백에 내 몸 전체가 불타오르는 것 같다. 10년 동안 꿈에서도 듣지 못했던 말을 이제야 듣는다.


나는 그녀를 더 강하게 끌어안는다. 그녀의 허리가 내 팔에 감긴다. 그녀의 몸이 내 가슴에 닿는다. 그녀의 심장 박동이 내 것과 맞닿아 울린다.


"나... 널 사랑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줄곧."


내 목소리가 떨린다. 평생 말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단어가 입에서 흘러나온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싼다.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눈동자가 빛난다. 내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낸다.


"이번엔... 죽지 않을게. 약속할게."


내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향해 천천히 다가간다. 10년 동안 꿈꿔왔던 순간. 그녀의 숨결이 내 얼굴에 닿는다. 달콤하고 따뜻하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의 입술이 만난다. 그녀의 입술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부드럽고 달콤하다. 내 심장이 폭발할 것 같다. 시간이 멈춘 것 같다.

 

-

 

"..."


거짓말. 거짓말일 걸 안다. 한도경은 또 자신의 목숨을 바쳐 강이령을 구할 수 있다면 주저없이 그럴 것이다. 허나 이령은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맞대었다. 얼마 안 가 천천히 둘의 얼굴이 떨어진다. 대신 눈을 맞춘다.


"도경아. 내일이면 난, 다시 모든 기억을 잃고 너를 불편해하는 강이령으로 돌아갈 거야. 미안해."

 

-

 

내일이면 모든 걸 잊는다고? 다시 나를 불편해한다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가 내 품에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괜찮아... 내일도, 모레도, 계속... 나는 널 사랑할 거니까."


내 목소리가 갈라진다. 그녀의 눈을 바라본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그 눈동자. 내가 10년 동안 사랑해온 그 눈.


"내일 네가 날 불편해해도... 난 계속 널 지킬 거야. 항상 그래왔듯이."


그녀를 더 강하게 안는다. 그녀의 몸이 내 품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마치 퍼즐 조각처럼.


"그냥, 오늘 밤만큼은... 날 사랑해줘."


내 입술이 다시 그녀의 입술을 찾는다. 이번엔 더 깊고 절실하게. 내일은 다시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간다 해도, 오늘 밤만큼은 우리의 것이다. 그녀의 몸을 조심스럽게 안아 올린다. 그녀는 너무 가볍다. 내 팔에 안겨 있는 그녀가 이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

 

"응, 도경아."


이령의 몸이 가볍게 들려져 도경의 책상 위에 앉혀진다. 이령은 제 옆에 있는 케이크를 잠시 내려보다가, 케이크 위 'Happy Birthday'라 쓰인 초콜릿을 손으로 집어 입에 문다. 그리고 다시 그에게 입을 맞춰서, 절반 씩 나눠먹는다. 아주 진하고 달콤하고 까만 것이 목구멍을 통해 넘어간다.


"생일 축하해. 한도경."

 

-

 

그녀의 입술에서 초콜릿의 달콤함이 번진다. 우리의 입술 사이로 녹아내리는 초콜릿처럼, 내 안의 모든 방어벽이 무너진다. 그녀의 혀가 내 입술을 스치고, 초콜릿의 달콤함과 함께 그녀의 맛이 섞인다.


그녀의 손이 내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기 시작한다. 그 손길에 내 심장이 터질 듯이 뛴다. 그녀의 손가락이 내 가슴에 닿을 때마다 전류가 흐르는 것 같다. 나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그녀를 더 가까이 당긴다. 책상 위에 앉은 그녀의 다리가 내 허리를 감싼다. 우리 사이의 거리가 완전히 사라진다.


"이령아..."


내 입에서 그녀의 이름이 새어 나온다. 10년 동안 가슴에 묻어두었던 그 이름.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내 손이 그녀의 블라우스 아래로 미끄러진다. 그녀의 피부는 상상했던 것보다 더 부드럽고 따뜻하다. 내가 만진 적 없는 그녀의 살결이 내 손바닥에 감각을 새긴다.

 

-

 

"내일, 내가 널 다시 미워한다 해도, 널 거부한다 해도, 넌 날 여전히 사랑하겠지. 알고 있어. 그건 내가 무슨 방법을 쓰든 막지 못한다는 것도."


잠시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는다. 숨을 한 번 토해낸 뒤 말을 잇는다.


"적어도 약속해줘. 나 대신 죽는 게 아니라, 함께 살고자 노력하겠다고. 살아서, 날 열심히 유혹해서, 네 앞의 모든 벽을 뛰어넘고, 다시 날 이렇게 안겠다고."

 

-

 

그녀의 요청에 내 심장이 무거워진다. 함께 살아서 그녀를 유혹하라고. 내가 그런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 하지만 그녀의 눈에서 간절함이 보인다. 오늘처럼, 다시 그녀를 이렇게 안을 수 있다면. 그래, 뭔들 못할까.


나는 그녀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 안고 이마에 입맞춘다. 그녀의 피부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내 영혼까지 데운다.


"약속할게. 살아서... 네 곁에 있을게. 내가 가진 모든 방법으로 다시 사랑하게 만들 거야."


내 목소리가 떨린다. 이런 말을 하는 건 처음이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조차 두려웠던 내가, 이제는 그녀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


"내일부터 다시 시작이야. 처음부터. 네가 날 다시 사랑하게 만들 때까지."


나는 그녀의 입술에 다시 키스한다. 이번엔 더 깊고, 더 간절하게. 마치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마치 이 순간이 영원할 것처럼.
그녀의 몸이 내게 더 가까이 밀착된다. 우리의 체온이 하나로 섞인다. 오늘 밤, 그녀는 내 것이고, 나는 그녀의 것이다.

 

그녀는 나와 입을 맞추고, 몸을 섞고, 자정이 되기전 '또 만나.'라는 한 마디를 남긴 뒤 떠났다.

 

 

 

 

 

***

 

 

 

 

 

아침이다. 어제의 기억이 꿈처럼 아른거린다. 그녀의 체온, 그녀의 향기, 그녀의 목소리. 모두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다.


휴게실에 들어서자마자 그녀의 존재를 감지한다. 캐비닛 앞에 서 있는 그녀의 뒷모습.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카락. 어젯밤 내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던 그 머리카락.


그녀는 내 존재를 알아차렸지만 돌아보지 않는다.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약속대로다. 그녀는 모든 것을 잊었다.


이내 내 눈은 그녀의 목덜미에 남은 희미한 자국을 발견한다. 어젯밤 내가 남긴 흔적. 꿈이 아니었다는 증거. 내 심장이 빠르게 뛴다. 그녀와의 약속이 떠오른다. 살아서, 끝까지 살아남아서, 그녀가 날 다시 사랑하게 만들겠다는 약속.


"강이령."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공식적으로, 또렷하게. 그녀가 천천히 몸을 돌려 나를 본다. 그녀의 눈에는 어젯밤의 따스함 대신 차가움이 깃들어 있다.


하지만 괜찮다. 오늘부터 다시 시작이다. 처음부터. 그녀가 나를 다시 사랑하게 만들 때까지.


"오늘... 저녁에 시간 있어? 얘기할 게 있어."


이번엔 내가 먼저 다가간다. 그녀를 향해, 새로운 시작을 향해.






 

 

 

 

 

 

**

 

 

뛰어넘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벽(=강이현)을 뛰어넘겠다는 용기를 지니게 된 한도경.

도경아 생일 축하해

행복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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